나쁜 사람 되지 않기 잡담회
(이 잡담회는 한배곳 2기의 한배곳 3학년 한 해 보여주기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때: 2016년 12월 18일 일요일 14:00 곳: 이상집 304셀 진행: 김다산 - 제가 일단 얘깃거리를 몇 개 가져왔어요. 이것만으로는 시간을 보내기 부족하니까 다들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저는 예전에 친구와 있던 일을 각색해서 만화작업을 했었어요. 근데 그 만화가 반응이 좋았었거든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친구가 이 이야기를 알게 되면 나를 못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고. 근데 그걸 물어볼 수는 없었어요. 그 뒤로 올렸던 모든 사이트에서 그 만화를 내리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문제가 있는 작업을 했어요.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사용해서 만들었고. 뭐가 문제일까요? 제가 잘못한 건지, 아니면 작업을 한 뒤의 태도가 잘못되었는지. 이야기를 한번 해 봤으면 해요.
- 무슨 작업을 했었나요? 어떤 내용으로?
- 일단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에.
- 왜 그게 인기 있었다고 생각해요?
-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재미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다들 재미있었다고 해 줬으니까.
- 보통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같이 겪지 않았어도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하고. 본인은 어떤 지점에서 내가 이걸 쓰면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나요?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상대 역을 만화속에서 얄미운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그게 나중에 가니 옳지 않다고 느껴졌고요. 아무리 각색을 했고 그 사실을 나만 알더라도 그게 찔리니까.
- 사진을 찍는데, 찍힌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알면서 사진 찍히는 건 상관없는데 모르는 새에 찍히는건 너무 싫어요. 못났다고 생각해서. 근데 그렇게 싫지는 않아요. 제가 제 모습을 싫어하는 것뿐이니까.
- 저는 사진 얘기는 아니고 다산의 만화 이야기인데,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게 읽히잖아요. 누군 착하게 그리고, 누군 못되게 그리고. 근데 그걸 판단하는 거는 독자일 것 같아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 작가가 함부로 남의 이야기를 썼어요. 그 작가가 늘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가 아무리 개인의 경험을 창작으로 이끌어 낸다고 해도 몇 겹의 레이어를 깔아줘야 한다. 근데 그게 당사자한테는 안 그렇더라고요. 본인한테 일어났던 일을 말하지 않고 함부로 만화로 그려낸다는 게. 하필 그 내용이 당사자가 힘들어하던 내용을 다룬 거였어요. 윤리적인 문제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지고 온다는 게.
표현의 자유라고 보통 뭉뚱그려진 말로 창작자의 권한 같은 것들을 내세울 때 그 표현의 자유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특히 사회적 약자를 다룰 때라거나 개인의 이야기를 소재화할 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안 괜찮은지. 이것은 창작자들의 오랜 고민이며 창작자를 친구로 둔 사람들 사이에는 루머가 떠도는 일도 많잖아요. 이거 쟤 얘기 아니야? 등. 근데 꼭 자기 이야기만을 쓴다면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그렇다면 가장 최근의 논란이 되었던 것처럼. 반이정이 ‘누구나 여고생에 흥분한다’고 말한 것처럼. 그런 사안에 동의하는지 아닌지. 좀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요.
- 제가 인상 깊게 본 인용구가 있는데요, 데즈카 오사무가 이런 말을 했었어요. 만화를 그릴 때 이것만은 반드시 지켜야한다. 그것은 기본적인 인권이다. 만화를 이용해 호소하는 건 상관없지만, 기본적인 인권만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 하나. 전쟁이나 재해의 희생자를 놀리는 것, 하나. 특정 직업을 깔보는 것, 하나. 민족이나 국민, 혹은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것. 단순히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에는 내 가까이에서 일어난 일이고, 그것들을 통용할 수 있는 기준이나 그런 것들을 가지고 윤리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비교를 해서 보며 작업을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사실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보다는 책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책임을 어떻게 지느냐. 저는 표현의 자유엔 끝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뭘 만들든 상관없되, 그 책임도 온전히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는 제가 책임을 진 방식이 너무 옳지 않았다고 생각해요(만화를 그냥 인터넷에서 내린 것). 지금 작업하는 만화 첫 번째 내용도 제가 허리를 다쳤을 때 지팡이를 짚고 다녔을 때의 이야기였는데요. 나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데 너는 왜 양보를 안 해 주냐 이런 내용이었는데, 평생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사람들이 이걸 보면 기분이 나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접근이 좀 다른데, 내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자유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작업을 할 때 표현의 방법이 적긴 해요. 다른 소재를 사용하고 싶다고 했을 때, 상대방과 깊은 대화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 저는 개인의 성향을 보여주는 카드캡터 파티 작업을 했었는데 좀 힘들더라고요. 내가 생각 할 때는 이게 이 사람의 포인트인데 상대방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에는 재미가 없더라도 문제가 될 지점들을 다 제거했어요. 나는 이걸 하는 이유가 다 같이 재밌자고 하는 이유인데, 그리고 그걸 팔아도 내가 그 사람의 정보를 파는 거니까 그게 싫었어요.
- 표현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했지만, 그 이후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으면 내 자유를 맘껏 표현하면 되죠. 그래서 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봐야한다고 생각해요. 방구석에서 내가 뭐 만들고 혼자 보고 웃으면 뭘 만들든 상관없죠. 내 윤리의식에 찔리지 않는 부분이 어디까지 가능하냐, 파티에서 만들어진 모든 것이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면서 만들자. 적어도 표현의 윤리에 벗어나지 않는 거고, 그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 다음 작업은 다르게 작업했어요.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 관한 만화를 그렸는데, 당시 비슷한 증세로 힘들어하던 친구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조언을 구하며 작업을 진행했고 그래서 떳떳해요. 그래서 오히려 작업윤리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거에요. 표현의 자유는 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작품이 공개되고 나면 그건 평가를 받고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최대한 그 전에 문제의 소지를 어떻게 없앨 수 있을지. 저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런 지켜야 할 선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윤리에 대한 선이 많아지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어떤 작업을 보고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에 관해서 또는 그런 것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소비자 혹은 관람객의 입장으로서 이야기하는데요, 제가 화가 날 때가 있다면 어떤 작업을 봤는데 그 작업이 저에게 기분 나쁘게 다가올 때요. 저걸 저런 식으로 하면 뭐하자는 거야? 보고 싶지 않다. 보지 않아야겠다. 이런 작업은 나랑 맞지 않아. 폐가 되고. 그래서 그런 작업은 최대한 안 보면서 살아야겠다 싶었는데, 그런 작업들이 너무나 넘쳐나는 거에요. 스스로도 무슨 작업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다 보면 즐길 것도 없고, 내가 만들어서 내놓을 데도 없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고민을 해봤지만, 사회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각자의 기준들이 다른 거고, 통용되는 기준이 어디로 기울어져있느냐에 대한 문제였던 것 같고요. 나는 작업자이기도 하고 소비자이기도 하고, 나는 어떤 작업을 양분으로 해서 가져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결국, 내가 내놓은 것을 어디서 어떻게 평가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옛날에 내가 좋아했고 영감을 주던 것들을 보면 지금 와서 다른 선을 갖고 봤을 때 굉장히 어이없거나 한 게 많아요. 내가 이런 것을 좋아했었다니, 하면서. 근데 과거의 나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떤 웹툰을 보고 제 선도 바뀐 거죠. 작가 지망생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주인공이 생활툰을 그린다고 주변인들 일상을 파먹는다고 생각을 해요. 근데 그걸 보고 나니까 내가 걔랑 다른 게 뭔가. 싶어서 작업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어요.
- 후죠시 매니페스토라는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커먼센터에서 전시를 했는데 하루 만에 폐쇄됐어요. 그림은 내리고 전시는 계속 했지만. 전시 첫날부터 경찰이 들이닥쳤대요. 음란물로 신고가 들어왔다고. 근데 나중에 그 신고자들이 사과글을 올린 거에요. 왜 신고해놓고 사과하나 했는데, 존잘(존나 잘그림, 동인계 은어)님의 그림을 ‘음란물’로 치부해서 죄송하다. 라는 식의 사과였거든요. 이게 정말 다양한 윤리들이 충돌해서 나온 것이더라고요. 저 스스로는 후죠시 문화를 즐기는 입장이기도 한데 그 신고를 한 사람들이나 그 사과문을 쓰라고 종용했던 다른 팬들이나 굉장히 이상해 보였어요. 근데 ‘이 모든 상황을 다 내가 의도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진챙총이라는 작가도 이상했어요.
- 저는 음알못(음악을 잘 알지 못함)이지만 음악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힙알못(힙합음악을 잘 알지 못함)인데 힙합도 좋아하고요. 근데 그것에 쓰이는 가사들이 불쾌했고, 노래는 너무 좋은데 가사가 너무 날 불편하게 할 때가 있어요. 근데 인터넷에 보면 창작의 자유다. 그걸 허용하지 않으면 이렇게 재밌는 게 안 나온다. 다른 분들은 이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아까 제가 표현의 자유는 끝이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표현의 자유는 욕을 먹지 않을 자유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런 것 보기 싫고 이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검열이라고 하는데 왜 검열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이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면 ‘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그러지 않겠습니다.’라고 해 주면 좋겠고 그런데, 만약 그게 내게 다가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고민되거든요. 만약 내가 아무도 못 보게 만화를 내렸다 쳐요. 근데 이 만화의 소재로 쓰인 사람에게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게 되게 고민돼요.
- 그냥 ‘앞으로는 이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데 누가 ‘예전에 그 만화 좋았는데 어디 갔어요?’ 라고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 아까 말했던 작가가 이자혜인데, 지인이 당한 폭력을 이름만 바꿔서 그대로 그렸었어요. 그걸 보며 여러 생각을 했어요. 저는 이자혜라는 작가를 되게 좋아했었거든요. 그래서 혼자 생각을 해 본 거예요. 만약 이자혜 작가가 자기 죄를 뉘우치고 공론화되기 전에 사과하고 다 내렸었다면 그걸로 책임이 끝난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하면 책임이 덜 해질 거라는 생각은 확실하게 들었는데, 제 양심상에서 쇼부를 봤을때는 나중에 다산이 그린 만화의 당사자들이 와서 나 이거 봤어, 왜 그랬어? 하면 어떻게 할지.
사실 그래서 저는 비겁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어요. 모두가 그걸 잊어버리고 아무도 다시는 얘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두 번째 이야기는 소비자로서 소위 말하는 ‘나쁜’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 저는 폭력적인 걸 보는데, 이게 괜찮을지 늘 생각이 들어요. 보고 즐기는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친구들하고 게임을 하면서 얘기를 하다 보면 폭력적인 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게 나중에는 말이 아니라 혹시 행동으로 나오면 어떡할까 싶기도 하고.
- 각자가 생각하는 폭력성이나 나쁜 것이 뭔가요?
- 저는 여성 혐오적이거나 남성 위주인 콘텐츠가 폭력적이라고 느껴져요.
- 저는 ‘왕좌의 게임’을 좋아하는데 내용인즉슨 가상의 일곱 개의 왕국이 있는데, 시대적인 배경 때문인지 전쟁을 주도하는 건 남자들이고 여자는 부수적이고. 근데 괜찮게 볼 수 있던 이유는 현실과 가상으로 분리된 점도 있고, 시대적인 이유도 있었고요. 근데 내 태도가 고민되는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랑 ‘슈퍼맨이 돌아왔다’. 되게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tv에 나오는 것이 굉장히 나쁘다고 생각했어요. 내 부모가 연예인이라는 것만으로 자기 아기 때 막 벌거벗고 그러는 게 전국민이 볼 수 있게 나오고.
- 해외에선 어떤 여자가 자기 부모를 고소했어요. 페이스북에서 자기 어린시절 사진(발가벗고 있거나 기저귀 찬 사진)을 내려달라고 했는데 부모가 안 내려줬거든요. 그래서 고소를 했대요. 어린 나이일 때는 선택권이 없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 tv나 sns를 보다보면 보고싶지 않은 게 나오잖아요. 집에 가면 습관적으로 tv를 보는데 내가 보기엔 불편한 게 나오는데 가족들은 아무렇지 않아 하고. 이게 왜 불편한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드라마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블랙 미러’란 드라마가 있어요. 주로 매체에 관한 내용인데 SNS로 사람들 계층을 나누고 그러거든요.
- 저도 ‘왕좌의 게임’을 이야기하자면, 저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불편했거든요.
- ‘왕좌의 게임’을 본 입장은 아니지만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면,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현실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놓는 건 무책임하다고 볼 수도 있는 거로 생각해요. 어느 시대상을 따와서 만들었다고 해도 실제 그 시대의 나빴던 점까지 그대로 가져가야만 하나? 싶고.
친구가 추천해준 드라마인데 제목은 몰라요. 어떤 여의사가 중세시대로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그 사람은 현실에 남편이 있어요. 근데 그 중세시대에 너무나 이상형인 남자를 만나요. 그리고 남편의 조상을 만나게 돼요. 근데 그게 여성의 판타지를 반영한 미국 드라마예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여성이 도구로 나오는 것을 남자로 바꾼 거에요. 근데 어떤 평론가가.’그럼 이건 괜찮은가?’ 이게 여성이 남성으로 바뀐 것만으로 괜찮은 거냐. 저는 공감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가 불편함을 느꼈을 때 ‘나 완전 불편했거든’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도 좀 폭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조한혜정 교수님이 강의할 때 ~학 하지 말라고. 피곤해진다고. 물리학을 하면 물리학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여성학을 하면 여성학적으로 세상을 보게 돼요. 그것 밖에 모르니까. 나는 내 깔대기로 전체를 바라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감동받았거든요. 비온뒤무지개재단 선생님께서 세미나에 오셨을 때 ‘성별이 뭐에요?’ ‘여자요.’ ‘왜요?’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되게 놀랐어요. 이런 대답을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이 당연한 걸 질문 받으니 신기했어요.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많이 생겼는데, 뭔가 여성주의적 시선을 가지지 못한 정치인들의 발언 때문에 그 사람이 해왔던 것들이 싹 다 부정되는 상황이 많았잖아요. 정치인은 대변인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김제동, 이재명, 여러 정치인들 모두. 다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 우리나라의 정서가 좀 그래요. 누가 피아노를 잘 치면 천재라고 하고 누가 실수하면 완전 깎아내리고, 사람을 한 가지로만 보는 게 있어요.
사람은 입체적이라는 말. 내가 어떤 부분에선 관대할 수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난 못난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하고. 그 사람이 아무리 입체적인 성격을 가졌어도 확대된다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다음 주제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인데, 제 작업에도 썼던 이야기이지만 친구들과 즐기는 취미가 있는데, TRPG라고 주사위 굴리고 노는 게임인데 출판사에서 텀블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목표 초과달성 보상 중 2차 대전 때 러시아 여성 파일럿들의 활약을 그린 룰을 출판하는 게 있었어요. 사장님은 그 일전에 페미니즘 운동 전반을 지지했었는데, 커뮤니티에서 ‘결국 ‘그것’의 펀딩이 시작됨’ 하는 식으로 금기시하기도 하고 페미니스트들이 과연 이 펀딩을 성공시켜줄까요? 하며 비꼬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어요. 사장님이 자기는 미움받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자기를 미워하고 누가 자기를 미워하지 않을까가 두렵다고, 나쁜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두렵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어요. 성인군자는 못 될 것 같은데, 덜 나쁜 놈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층위의 선악이 있고, 다양한 면이 있지만, 최대한 여러가지 면에서 착하게, 그게 안 된다면 나쁘지 않게 되고 싶어요.
- 저는 여기서 착함과 나쁨 이분법에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작가가 되면 파급력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윤리의 상향선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게 어떻게 될 수 있을지, 수요자, 창작자의 입장에서도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을까요?
- 플랫폼이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작업을 할 때 어떤 것이 윤리적인가를 따지기 전에 작업을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고, 그것에 대해 파티에서라면 문제를 더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어떻게 주제 삼을 것이며, 어떻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장치가 아직 없다고 생각해요. 플랫폼이라고 하면 방방뜨는 분위기고, 구체적으로 다산이 계속 이런 식의 작업을 할 거라면 자기 프로젝트로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여기서 커뮤니티 문화가 좋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사람들이 방어하고, 안전하게 있으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그게 가장 좋지 않은 태도라고 느껴져요. 부끄러워서 농담조로 넘겨버리는 것을 계나 모임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요?
- 어떤 문화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엘라이 프로젝트도 선택지를 주는 것이잖아요. 사람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양극의 프레임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중간에서 양쪽에 이야기할 수 없을 때 선택지를 준다는 개념은 어쨌든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주고, 무기력한 사람들한테도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것과 비슷하게 내가 어떤 것에 대해 잘 판단이 되지 않을 때, 파티 안에서는 옆 사람한테도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윤리적인 부분도 추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네가 이런 방법으로 발전시켰을 때 어떨 것 같다는 것을 서로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