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1. 정치적 근대
-프랑스 혁명 프랑스의 자유주의 혁명인 프랑스혁명(1789년 7월 14일~1794년 7월 27일)은 자본가계급이 부상하고,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자유의식이 고취된 가운데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던 평민의 불만을 가중시켜 마침내 흉작이 일어난 1789년에 봉기가 일어났다. 절대군주체제인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을 무너뜨리고, 이후 1792년 9월 21일 프랑스 제 1공화국이 수립된다. 프랑스 혁명은 크게 보면 유럽과 세계사에서 정치권력이 왕족과 귀족에서 자본가 계급으로 옮겨지는, 역사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기를 열어 놓을 만큼 뚜렷이 구분되는 전환점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18살 이상의 남자들은 모두 보통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는 권리가 보장이 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정치적인 평등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근대의 기점이라고 평가한다.
다음은 1789년 8월 26일 채택된 프랑스 인권선언 중 일부이다.
제 1 조,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제 2 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권리를 보전함에 있다. 그 권리란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의 저항 등이다. …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하면서, 1793년에는 자유와 평등 뿐 아니라 안전, 인격, 권리, 소유권 등을 다룬 ‘프랑스 헌법’이 제정된다.
당시 프랑스는 계몽사상가인 루소와 백과전서파인 볼테르 등의 사회계약설이 많은 지식인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것을 국민이 공감하여, 당시의 사회 제도(구체제)에 대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루소는 그의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국가는 그 전체 구성원과 계약을 통해 성립되며 그 사회 안의 모든 개인은 사회구성원 전체 의사로 통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조: 위키피디아
-국가의 성립 ‘국가 단위’가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심단위로 등장하게 된다. 국가가 한 단일한 공동체로 표상 체계로 자리 잡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국가’ 단위가 아닌, ‘도시’를 통해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려고 한다.
2. 경제적 근대
-자본주의: 자본주의는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기초 단위인 ‘노동’과 축적이 가능한 ‘자본’의 두 축으로 운영된다. 자본축적능력이 충분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계층을 ‘자본계급’이라고 부른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유로운 자유경쟁이 균형을 맞춰갈 것이라고 본다. 17세기에 스페인과 포루투갈에서 현물 중심의 경제는, 18세기가 되자 네덜란드 중심으로 어음과 주식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발생한다. 생산방식에 있어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에서 다시 현물 중심의 경제 활동이 벌어지다가, 미국에서 가치를 늘려가기 위한 가짜 돈인 금융자본주의가 자리잡는다. 경영방식에 있어서, 기계화를 위해서는 인간적 교류가 배제되어야 한다는 테일러이즘, 컨베이어벨트 포디즘. 분업을 통해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인 생산을 이룰 수 있었지만, 일의 전면적인 가치나 쓰임새를 알지 못하게 된다. -기계의 도입과 재생산으로 인해 인간의 소외가 일어났다. -화폐: 은행을 중심으로 추상화된 화폐
3. 사회적 근대
관료제의 등장, 개인의 출현, 종교개혁, 데카르트 -개인: 의지와 상관 없이 신분제에 의해서 교황, 제후, 군주에게 규정되어왔던 사람들은, 헌법으로 개인의 자유와 평등권을 보장받으면서 자기의 노동력을 사고 팔 수 있게 되었다. 개인들의 이해관계 사이에 합의를 이끌어내는 ‘계약’과 계약을 전문적으로 행사하는 ‘관료’가 등장했다. -종교개혁: 마틴 루터가 로마 교황청이 판매한 면죄부에 반박하자,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한다. 피난 당한 루터는 라틴어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인쇄기술의 도움으로, 성경을 출판한다. 칼뱅은 귀족들만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검절약하는 청교도의 생활을 부각하면서 개신교의 빌미를 제공한다. 성공회의 출현. -카페
살롱이나 클럽이라고 해도 나라와 도시, 시대에 따라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공통점은 살롱과 클럽이 배출한 프랑스의 오네톰, 영국의 젠틀맨 에서 볼 수 있듯이 사교와 지성이 조화를 이루어 정파나 당파를 구성하더라도 슬로건을 내세운 이데올로기적 논리로부터 자유로웠다는 사실이다. (중략) 국가의 품격을 지킨다는 것은 사회가 개인의 경우와 다름 없이 서로 이웃에게 귀 기울이며 반듯한 말씨와 예절을 두루 갖추는 것을 일컫는다. 116~117쪽
우리는 가장 자유로운 사상을 공공연히 글로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카페에서는 자유가 속삭이고 혁명이 농담을 즐겼다. 카페는 이야기하는 신문이며 모반자들의 소굴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사상적으로 싸울 수 있었으며, 구제도를 암호로써 타도할 수 있었다. 우리 철학자들은 카페에서 상층계급을 문명화, 시민화했다. 카페와 살롱에서 사회는 민주주의적이 되었다. 258쪽,「담론의 탄생:유럽의 살롱과 클럽과 카페 그 자유로운 풍경」, 이광주, 한길사
4. 사상적 근대
-인문과학적 관점: 데카르트의 코기토 데카르트는 ‘이성 능력의 완전성’을 기초로 해서 이성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대상에 일치하는 것이다. 주체는 확실한 사고와 지식을 가질 수 있고, 그 능력은 주체의 이성으로부터 온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나’라는 주체를 신과 대상으로부터 분리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실체’는 아무리 모습이 바뀌고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변함없는 불변적인 본질이고, 모든 사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연장(신체)과 사유(정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데카르트에게는 생각(사유)이 존재(연장)보다 우선한다. 따라서 주체란 생각하는 나, 곧 정신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존재론: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지 *인식론: 대상적 인지와 지식 데카르트는 모든 인간이 완전한 것을 인식할 능력(본유능력)을 타고난다고 믿었고, 이것이 위에 언급된 ‘이성 능력의 완전성’이다. 존재에 앞서, 절대진리를 향해 이성을 계속 연마할 수 있는 존재를 사람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의 사고방식은 과학의 발전을 통해 객관적인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과학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고방식은 주체와 대상이란 두 개의 항(項)만으로는 내가 인식한 것 대상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진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적 관점: 갈릴레이와 뉴턴의 고전역학 모든 현상은 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다. 운동은 주어진 물체의 위치와 속도로 적을 수 있다.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운동이다. 만약, 속도의 변화가 있다면 운동법칙을 작성해 설명이 가능한데, 그 원인을 ‘힘’이라고 부르고 운동을 관찰해보니 몇 개 되지 않았다.
위와 같이, 고전역학에서 미래는 초기의 조건으로 결정된다. 참조: 벙커1특강 파토, 김상욱 - 과학같은 소리하네. 함 찔러보는 양자역학